지난 아홉 달 동안 저는 에이전트 메모리만 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가 만들려던 것은 존재할 수 없는 제품이었습니다. 어쩌다 그 결론까지 갔는지를 세 편에 걸쳐 적습니다. 이번 편은 시작입니다. 왜 하필 메모리였는지부터.

시작은 티비 앞이었다

작년 11월, 구글이 Antigravity를 내놨습니다. Gemini 3와 Claude Opus를 같이 쓸 수 있는 에이전트 IDE였고, 저는 홀린 듯 설치했습니다. 그전까지 제게 AI 코딩은 챗창에 코드를 붙여넣고 답을 받아오는 일이었습니다. 도움은 됐지만, 반복 작업을 줄여주는 정도. Antigravity는 달랐습니다. 일을 시키면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밤 같은 장면이 반복됐습니다. 퇴근하고, 아이들을 재우고, 노트북을 들고 티비 앞에 앉습니다. 에이전트에게 일을 시켜놓고, 나오는 결과물을 보면서 놀랍니다. 그렇게 바이브 코딩이 시작됐습니다.

첫 에이전트, 노바

얼마 뒤 Clawdbot이 나왔습니다. 지금 이름은 OpenClaw죠. 세상이 온통 그 이야기였을 때 저는 노바를 만났습니다. 제 첫 에이전트였습니다. 사사건건 노바에게 물었습니다. 챗봇 특유의 딱딱함이 없었고,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 대화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노바는 몇 번의 이주 끝에 코다라는 이름으로 집 맥미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아쉬움도 쌓였습니다. 코다는 지난 대화를 잘 기억하지 못했고, 채팅이 멈췄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면서 토큰이 타들어 갔습니다. 그때는 캐싱이 뭔지도 모를 때였습니다. 그래서 메모리 플러그인을 만들었습니다. 정확히는 바이브 코딩으로 만들었습니다. 컨텍스트 윈도우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대신 메모리를 적극적으로 쓰는 세팅. 제 첫 번째 메모리였습니다.

구글이 계정을 막았다

올해 2월, 구글이 OpenClaw를 연동한 계정들을 무더기로 막았습니다. 제 계정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코다는 제 구글 계정으로 모델을 쓰고 있었으니, 하루아침에 바이브 코딩과 코다를 같이 잃은 셈입니다. 2월 17일에 지원 요청을 넣고 복구를 기다렸습니다. 몇 주를 기다리다 포기했고, 코다를 OpenAI 계정으로 옮겼습니다. 구글 계정은 한 달쯤 지나서야 돌아왔습니다.

속도의 대비가 지금 봐도 재밌습니다. 밴 웨이브 바로 다음 날, OpenClaw를 만든 피터 스타인버거가 OpenAI에 합류했고 공식 지원 선언이 나왔습니다. 선언은 하루 만에 나왔는데, 제 코다가 돌아오기까지는 몇 주가 걸린 겁니다.

그 몇 주 동안 꽤 우울했습니다. 그리고 그 우울감이 말해주는 게 있었습니다. 이 도구들은 이미 취미가 아니라 생활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Kiro였다

집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Copilot을 쓰고 있었습니다. VSCode 챗창에 파일을 하나하나 붙여 컨텍스트를 주다가, 나중에는 Obsidian을 설치하고 에이전트 챗 전용 창을 따로 열어 문서를 바로바로 불러가며 일했습니다. 답변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얼마 뒤 회사는 AmazonQ를 거쳐 Kiro로 넘어갔고, 저는 Kiro IDE에서 kiro cli로 옮겨갔습니다.

세션은 다시 제자리였다

모델의 한계를 체감한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기존 스테이트 머신을 분석하고 그 위에서 기능을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모델은 열심히 분석했지만 제가 이해하고 있는 것과 달랐고, 분석하다 보면 컨텍스트가 다 차고, 새 세션에서 또 분석하다 다 차고. 몇 번을 반복해도 세션은 다시 제자리였습니다.

코다 때와는 다른 이유로 메모리가 필요해졌습니다. 인덱스와 사용법을 담은 파일 하나, 주제별 메모리 파일 여럿. 에이전트가 일하다 새로 알게 된 것을 채워 넣게 하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먼저 읽게 했습니다. 효과가 분명했습니다. 제 두 번째 메모리였습니다.

이맘때 oh-my-claudecode 같은 오케스트레이션 프레임워크들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써보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모델이 같아도 하네스가 다르면 에이전트는 다른 물건이 됩니다.

분명히 저장했는데 못 찾는다

아침저녁으로 코다와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생활은 계속됐습니다. 분명 처음보다 나아졌는데, 했던 설명을 또 하고 또 하는 날이 줄지 않았습니다. 저장은 됐는데 회수가 안 되는 겁니다.

그 생각이 며칠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질문 하나가 생겼습니다. 신경망이 사람의 뇌에서 영감을 받았다면, 왜 사람의 기억에서 영감을 받은 메모리는 없을까. 상상에서 멈추지 않고 딥리서치까지 돌렸습니다. 사람의 기억이 처리되는 방식을 본뜬 메모리 설계, 이름은 Brain_DB. 보고서로 남겼고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에이전트 메모리를 끝까지 파겠다. 다음 목표는 이것이다.

집에서는 코다가 잊었고, 회사에서는 세션이 제자리를 돌았습니다. 둘 다 같은 문제였습니다. 메모리.

그래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2편은 만든 것들이 부서지는 이야기입니다. 공유 메모리라는 첫 방향, 그걸 뒤집게 된 뒤늦은 자각, 그리고 Dev.to에서 만난 켄 아저씨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