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AI 도구를 붙잡고 일합니다. 리서치도 초안도 코드도, AI가 먼저 만들면 제가 검토하고 고치는 식이죠.

그런데 회사 문서를 읽는데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같은 문장을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뜻이 안 잡힙니다. 피곤한가 보다 싶어 그냥 넘어가는 거죠.

몇 분 뒤 재미있는 대화를 하면 머리가 완전히 맑아집니다.

진짜 피곤한 거였다면 대화에서도 똑같이 흐릿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게 이상합니다.

“정신력이 바닥난다"는 설명은 안 맞습니다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정신력이 정해져 있고 그게 바닥나면 아무것도 못 한다, 보통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걸로는 재미있는 대화에서 갑자기 살아나는 걸 설명 못 합니다. 바닥난 게 대화 한 번에 다시 차지는 않으니까요.

관련 연구를 찾아보니 얘기가 다릅니다. 2015년의 2.5시간짜리 반복 과제 실험에서는 같은 사람이라도 중간에 보상을 키우면 피로감은 줄고 과제 성적은 오히려 올라갔습니다. 반대로 지루한 과제는 주관적 피로감과 하기 싫은 마음을 키우는데, 2008년 연구를 보면 이 피로감이 실제 성적 하락으로 늘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뇌는 하나의 배터리가 아닙니다. 졸림, 정보 과부하, 이 일이 그냥 싫음, 지루함, 너무 긴장됨. 원인은 서로 다른데 겉에서 보면 전부 “브레인 포그"라는 증상 하나로 보일 뿐이죠.

문제는 이 다섯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답이 전부 “쉬어야 한다"가 된다는 겁니다.

AI가 일을 가져갈수록 뭉뚱그리기 쉬워집니다

반복적이고 답이 뻔한 작업은 AI가 가져가고, 사람에게 남는 건 검토하고 판단하고 읽는 일입니다. 정답이 바로 안 보이는 이런 일에서는 지루함이나 저항감에서 오는 포그가 제일 잘 생기죠.

그런데 AI가 타이핑과 리서치 대부분을 대신 해줬는데도, 하루가 끝나면 “일을 많이 해서 지쳤다"로 정리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바닥난 건 체력이 아니라 판단하는 힘입니다. 하루 종일 결정을 내려야 했으니까요.

원인을 잘못 짚으면 처방도 틀립니다. 졸린데 명상으로 가라앉히거나, 저항감 때문인데 그냥 더 밀어붙이거나.

그래서 30초 안에 이렇게 확인합니다

포그가 오면 쉬기 전에 먼저 원인을 골라냅니다.

  • 눈이 무겁고 하품이 나면 졸림입니다. 햇빛을 보고 몸을 움직이거나, 짧게 자세요.
  •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고 있으면 과부하입니다. 머릿속 내용을 메모로 꺼내고 범위를 하나로 줄이세요.
  • 다른 일은 다 하고 싶은데 이 일만 유독 싫으면 저항입니다. 왜 필요한지 한 줄로 적고, 5분만 집중해 보세요.
  • 화면을 계속 바꾸고 싶으면 지루함입니다. 속도를 줄이고 하나만 끝까지 보세요.
  • 생각은 빠른데 조급하고 좁아지면 긴장입니다. 입력을 끊고 호흡을 늦추세요.

위 처방을 5분쯤 해봤는데도 안 걷히면, 그때는 제대로 쉽니다. 20분쯤 잡고요. 쉬는 방법도 원인을 따라갑니다. 졸린 게 아니면 걷거나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게 쉬는 겁니다. TV를 보는 것보다 머리를 푸는 데나 의욕을 되찾는 데 조금 더 낫다는 2021년 연구가 있거든요. 진짜 졸리면 그냥 짧게 자고요. 5분이니 20분이니 하는 숫자는 시작점이지 정답이 아닙니다.

이 20분 동안 릴스나 추천 피드는 열지 않습니다. 영상을 이것저것 넘겨보는 행동이 오히려 지루함을 키운다는 2024년 실험이 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도 넘겨보면 덜 지루할 거라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반대였다는 거죠. 게다가 원래 하던 일로 돌아와서 다시 집중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요.

하루는 이렇게 계획합니다

원인 진단이 그날그날의 대응이라면, 하루를 계획하는 방식으로 포그 자체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하루를 다시 계획하면서 제일 먼저 바꾼 것부터 적습니다.

아침에는 피드보다 밖이 먼저입니다. 일어나서 15~20분 밖에 나가는 걸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낮에 햇빛을 충분히 보면 맑게 깨어 있는 데 도움이 된다는 2022년 메타분석이 있어서죠.

점심 뒤에 처지는 건 원래 그런 겁니다. 아침부터 쌓인 졸음이 점심때쯤 몰려오는 거라, 음식 종류를 바꾼다고 사라지지 않고요. 제일 어려운 판단은 그 시간대를 피해서 하면 됩니다.

저녁에 또 집중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커피로 버티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그 한 잔이 그날 밤잠을 깎고, 다음 날 아침 포그로 이어집니다. 2023년 메타분석에 따르면 카페인을 마신 날은 밤새 실제로 잔 시간이 평균 45분 줄어듭니다. 잠드는 데 9분 더 걸리고, 중간에 깨어 있는 시간이 12분 늘고, 깊은 잠은 11분 줄어드는 식으로요. 커피 한 잔(약 107mg) 기준으로 취침 8.8시간 전까지만 마시면 이 손실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커피는 오후 일찍까지만 마시고, 저녁 일은 카페인 없이 합니다.

다음에 뇌가 멈추면

하루 종일 최고 상태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포그는 옵니다. 쉬기 전에 딱 하나만 확인하면 됩니다. 지금 이게 졸림인지, 저항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