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이트의 글은 에이전트가 초안을 쓰고 제가 다듬습니다. 초안에는 AI 특유의 어색한 표현이 섞여 나옵니다. 처음에는 눈에 띌 때마다 손으로 고쳤는데, 다음 글에서 같은 병이 또 나왔습니다. 고친 건 문장이지 버릇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래서 방식을 바꿨습니다. 지금 저는 어색한 문장을 고치지 않습니다. 지적만 합니다. 지적을 받은 에이전트가 교정 규칙을 만들어 스킬 파일에 쌓고, 다음 글부터는 그 규칙이 초안 단계에서 적용됩니다. 지적 한 번이 일회성 수정이 아니라 영구 규칙이 되는 구조입니다.
스킬 파일 하나면 시작할 수 있다
Claude Code의 스킬은 마크다운 파일 하나입니다. .claude/skills/prose-polish/SKILL.md처럼 폴더에 넣어두면, 글을 다듬을 때 에이전트가 이 파일을 불러 절차와 규칙을 따릅니다.
우리 스킬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절차(초안 전체 읽기, 규칙 위반 수정, 소리 내 읽듯 리듬 점검, 커뮤니티 스킬 2차 패스, 변경 내역 보고), 한국어 티 목록, 영어 티 목록, 그리고 지켜야 할 목소리. 마지막 항목이 중요합니다. 교정기가 문체까지 평평하게 만들면 안 되니까, 짧은 단문이나 정직한 한계 고백처럼 “지키라"는 규칙도 함께 둡니다.
규칙 몇 개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 번역투: "~에 대해", "~를 통해", "당신의" → 자연스러운 어순으로
- 무주어 은유 압축문: "틀려도 되는 영역부터 열립니다" →
무엇이 열리는지 불명. 주어를 밝혀 다시 쓴다. (지적, 2026-08-03)
- 영어 수사 직역: "two piles" → "두 무더기"(X).
같은 뜻을 한국어에서 어떻게 말하는지부터 다시 생각한다. (지적, 2026-08-05)
규칙마다 태어난 날짜와 원래 지적이 붙어 있습니다. 이 파일은 문법책이 아니라 사고 기록부에 가깝습니다.
규칙이 태어나는 순간
실제 사례 하나를 통째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최근 글 초안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틀려도 되는 영역부터 열립니다.
제 지적은 “표현이 좀 이상하네” 한마디였습니다. 여기서 문장만 고치고 끝내면 다음 글에서 같은 병이 또 나옵니다. 대신 에이전트가 이 문장을 분석해서 병명을 붙였습니다. 은유 서술어(“열린다”)를 쓰면서 주어를 떨어뜨린 것. 흥미로운 건, 영어로 생각한 문장을 한국어로 옮기다 생긴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영어 원문(“the door opens first where…")에도 같은 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규칙은 언어가 아니라 습관을 겨냥합니다.
그날 제가 한마디 더 붙였습니다. “나라면 그냥 그 문장 빼도 되겠어.” 이 말은 규칙보다 좋은 원칙이 됐습니다. 문장이 규칙에 걸리면 고치기 전에 먼저 빼본다, 뜻이 보존되면 뺀다. 지금 이 원칙은 스킬 절차 2번에 박혀 있습니다.
요점은 이겁니다. 지적을 문장 고치는 데 쓰지 말고 시스템 고치는 데 쓴다. 같은 노력으로 한 번은 문장 하나를 얻고, 한 번은 규칙 하나를 얻습니다.
문장 규칙만으로는 안 잡힌다
규칙이 열몇 개 쌓인 뒤에도 글이 AI 같을 때가 있습니다. 에이전트가 보여준 아웃라인에 제가 남긴 피드백은 이랬습니다. “아웃라인에서부터 AI 티가 팍팍 난다.”
문장이 아직 없는데 티가 난다는 건, 티가 구조에 있다는 뜻입니다. 찾아보니 세 가지였습니다. 직전 글과 같은 섹션 뼈대를 재사용하는 것. “리트머스” 같은 이름 붙인 장치를 글마다 우려먹는 것. 소재가 무엇이든 A와 B의 이분법 축부터 세우고 보는 것. 셋 다 문장 규칙으로는 안 걸립니다. 그래서 스킬에 “구조 티” 섹션을 따로 만들고, 아웃라인 단계에서 점검하게 했습니다.
검증된 커뮤니티 스킬을 겹쳐 쓴다
우리 스킬은 제 지적에서 자랐기 때문에, 제 눈에 걸린 것만 압니다. 그래서 2차 패스로 커뮤니티 스킬을 겹칩니다. blader/humanizer는 Wikipedia의 “Signs of AI writing” 문서를 기반으로 33개 패턴을 점검합니다. AI 문장을 수없이 걷어내 온 위키피디아 편집자들이 정리한 목록이라, 개인의 감보다 표본이 훨씬 큽니다.
설치는 SKILL.md 파일 하나를 .claude/skills/humanizer/에 복사하면 끝입니다. 영어 글에는 전체를 적용하고, 한국어 글에는 언어와 무관한 패턴(단문 드럼비트, 억지 3연 나열, 의미 부풀리기)만 적용합니다.
두 스킬은 잡는 게 다릅니다. humanizer는 통계적으로 흔한 AI 패턴을 알고, 우리 스킬은 제 글에서 실제로 나온 버릇을 압니다. 겹쳐 쓰면 일반 패턴과 개인 버릇이 다 걸립니다.
그래도 안 잡히는 것
한계를 정직하게 적겠습니다. 이 체계는 등록된 패턴만 잡습니다. 오늘도 새 지적이 나왔고, 내일도 나올 겁니다. 더 깊은 문제도 있습니다. 어색한 한국어의 뿌리를 추적해 보면 상당수가 같은 곳에서 나옵니다. 수사를 영어로 먼저 생각하고 한국어로 옮겨 적는 버릇. 이건 규칙 몇 줄로 완전히 막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 구조가 주는 건 방향입니다. 지적이 쌓일수록 규칙이 늘고, 다음 초안의 티는 줄어듭니다. 어제의 지적이 오늘 걸러지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시작하는 최소 버전
규칙 서른 개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시드 파일 하나면 오늘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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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prose-polish
description: 내 글의 AI 티 제거. 발행 전 글을 다듬을 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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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차
1. 초안 전체를 먼저 읽는다.
2. 아래 규칙 위반을 최소 수정으로 고친다.
걸린 문장은 고치기 전에 빼보고, 뜻이 보존되면 뺀다.
3. 바꾼 내역을 규칙별로 보고한다.
## 규칙
- 줄표(—)는 한 편에 2개까지.
- 번역투 금지: "~에 대해", "~를 통해", "당신의".
- 결론 신호어 금지: "결론적으로", "요약하자면". 그냥 결론을 말한다.
## 운영
- 사용자가 어색한 표현을 지적하면, 문장만 고치지 말고
병명을 붙여 규칙으로 추가한다. 날짜와 원래 지적을 함께 남긴다.
핵심은 규칙 세 개가 아니라 마지막 “운영” 항목입니다. 저 두 줄이 있어야 파일이 자랍니다.
그래도 남긴다
마지막으로 솔직하게 적겠습니다. 이 체계를 다 돌려도 제 글에는 아직 AI 티가 많이 납니다. 사실입니다. 그래도 남깁니다. 나중에 돌아보면, 이 어색한 문장들과 고쳐 온 과정 전부가 그대로 기록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